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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썰풀이, 잡담

[수학의 즐거움] 수학자로서 필요한 자질에 대하여

by EnjoyingMath 2023.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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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대화는 수학의 즐거움 유튜브 채널에서 학부생이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던 이야기를 글로 한차례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A.
제가 제 나름대로 객관화를 해서 봤을 때 적당한 수준의 응용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같은데, 이를테면, 뭐 학교 시험 잘 푼다거나 이 정도는 되는데 가끔 무슨 경시대회 문제라던가 아니면 올림피아드 문제라든가 아니면 책 연습 문제 중에서도 되게 어려운 문제들 끼어있는 거 보면 저런 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솔직히 아이디어가 잘 생각이 안 나고 그다음에 그 연습지 중에서도 또 힌트 있는 것들은 힌트를 보면 그래도 풀리는데 저거를 힌트가 없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저런 걸 생각하지 싶은 막연한 느낌이 들 때가 사실 많아요.
이게 지능의 문제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은 이게 사실 대학원 가서 박사를 따고 한다는 건 학자가 된다는 얘기고 남들이 안 했던 걸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이 남들이 해 놓는 것도 못 하고 있는데,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또 들고 이래서 그게 약간 또 걱정입니다. 

B.
그래서 고민이 되는 포인트가 어떤 건가요? 

A.
약간 제 느낌으로 말씀드리면, 박사를 해보진 않았지만 박사를 하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직관, 그리고 창의력이 부족한 것 같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례를 찾아보면 확률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순수 수학보다는 응용 분야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력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수학을 하는 박사나 교수님들이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B.
제 생각에는 이것은 기준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또한, 제법 보편성을 갖는 일반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즉,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수학은 질문한 민수님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너가 지금 이것도 제대로 못하는데 저걸 네가 할 수 있겠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말을 정확하게 해야합니다. 그래서 이것과 저것을 아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 다 모두 적용할 수는 없다는 거죠. 예를 들어, 엄마가 아들에게 "니가 지금 청소도 못 하는데 결혼할 수 있겠냐?"라고 한다면, 이는 위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진지하게 "그렇지, 나는 청소를 못하니까 결혼하면 안 되겠다"고 한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청소를 지나치게 안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생각의 방식에서 명백하게 오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B.
일단은 기준 설정의 문제인 것 같아요. 수학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기준, 근데 만약에 기준을 IQ 한 150 이상이고, 적어도 비범해하고 뭔가 빠르게 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면 이는 옳고 그른 것과는 별개의 카테고리일 것입니다. 각자가 상승하고 있는 이상적인 모습의 수학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자들 본인에게도 본인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답답해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 입니다. 제 개인 의견으로는 수학자라는 호칭은 일단 직업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학자는 직업적으로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데, 제 개인의 생각에는 하나는 수학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수학자라는 직업의 경우 보통 대학에서 고용되어 일하는 경우들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는 수학자들이 사회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기초적인 과목들을 가르치는 일이 많이 발생하지만, 수학자라는 직업이 사실상 하는 일은 수학을 연구하여 수학에 대한 연구 논문을 쓰는 것을 지칭합니다. 그래서 아티클을 쓰는 과정에서는 우리들이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배우는 책들을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연구 쪽으로는 수학적인 글을 쓴다는 것은 개발자가 개발자 레포트를 쓰는 것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의 경우 원석 같은 연구의 발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간결하고 명확한 아티클로 정리되어 수학자의 중요한 업적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B. 
책에서 연습 문제를 푼다면, 이미 알려진 것들을 다루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연습 문제는 corollary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각 개개인의 입장과 별개로 학계의 입장에서는 이미 잘 이해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 연구는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따라서 수학적인 논문을 쓴다면, 내가 질문하는 방식 또한 새로운 추구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기존에 제시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박사과정에서 지도 교수를 만나는 것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처음 연구를 시작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경험적인 지식을 종합적으로 전달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박사과정 학생을 길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은 이는 새로운 배움과 함께 불확실성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은 가능성이 있지만, 못하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환경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좋은 환경이란 단순히 네임벨류를 가진 대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분야를 배울 수 있는 좋은 환경에 가는 것이며, 불확실성을 어떻게 견뎌내는지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는 내가 지금 어떤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지, 어떤 연습 문제도 풀지 못하고 잘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은 푸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다만, 이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그 한계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진행될 수 있으며, 그런 과정을 겪는 사람들을 통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이 가능해지고, 동시에 절망과 좌절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만해질 수 있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견뎌내고 성취해낸 것을 생각해보면 자기반성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B. 
수학자들은 학부부터 박사까지 공통적으로 가령 직간접적으로 골목 대장을 하는 경우들을 겪는다고 보여요. 골목대장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인 우위를 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학벌이나 지식에 대한 욕구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우위는 수학자가 되는 과정과는 독립적인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내가 모르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른다'는 것은 피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모르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금 연습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분노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른다'는 것을 정서적으로 수치심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B.
내가 이런 사람인데도 모르겠다, 이런 쉬운 계산조차 못 한다, 이런 증명조차 못 한다고 느끼는 것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내가 모른다는 것에 노출되어야 한다는 필요조건이고, 그리고 내가 모른다고 지도 교수에게 얘기하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수학자들이 나누는 연구 이야기들 중 이미 알려진 것들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함께 공부할 필요는 없어요. 공부를 어떻게 할지는 주어진 맥락에 따라 연구 과정에서 선택할 문제 입니다. 공부 자체보다는 이 모른다는 무지에 더 적극적으로 노출되면서 어떻게 이를 극복할지에 대한 진전을 얻어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하는 것을 배우는 게 핵심입니다. 그런데 골목대장이 많이 경험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스스로 알고 있는 입장에 머무는 것으로 인해 '아는 입장'이 되고자 하는 편향성이 두드러질 수 있고 연구에 필요한 무지로 나아가지 못함으로 인해 발목이 잡힐 수 있습니다.

B.
수학적으로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 중에도 연구를 한 편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모르는 것에 노출되며 질문과 고민을 통해 진전을 얻는 연구의 센스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모르는 것에 계속해서 노출되며 그것을 파악해나가는 과정은 답답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이는 이미 알려진 것들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알아가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정도를 잘 조절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박사 고년차가 되었더라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논문을 한 편도 작성하지 못한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이들은 후배들, 동기들, 심지어 선배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데요. 그러나 정작 이들과 지도교수와의 관계는 좋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좋은 지도 교수라면 적어도 한 번은 잔소리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학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무언가를 공부해서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능력은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며, 진정으로 모르는 것에 직면하고 해결해 나가는 결단력과 인내력이 더 중요합니다. 상대적인 우위에 있는 경우들은 자신이 노출되는 느낌이 불편하고 나중에는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누군가가 수학자의 길을 가도 되느냐고 물어본다면, 이는 수학자뿐만 아니라 학자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으로 보입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인내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학자로서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B. 
학자가 되는 것은 대부분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 이게 가치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애매한 상태에서 뭔가를 해보는 경험이 깊어져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심지어 과정에서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 때가 많고, 지도교수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걸 공유하면 심지어 나는 이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도교수는 시큰둥할 수도 있고요. 반대로, 내가 이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지도교수는 이걸 논문으로 쓰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 판단도 사실은 내가 내려야 하는 판단이에요. 어떻게 할지, 지도교수가 시답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도 내가 이걸 가치 있다고 여기고 당당하게 추진할지, 내가 진행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도교수가 대단하다고 해도 내가 그걸 어떻게 판단할지, 불확실성을 견뎌내는 것에는 리스크들이 있기 때문에, 또 리스크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운도 실제로 개입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전을 얻으려고 하되, 학교에서 인정되는 방식까지 따라갈 수 있도록 견뎌내는 것이 많은 것들을 상대적으로 아는 사람과는 명확히 다른 역량입니다. 연구를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모르는 것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따라서 오히려 수학자들 간의 대화는 비록 내가 많은 면에서는 무지할지라도,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어떤 도구들을 사용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진솔하고도 밀접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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